돈 걱정이 심해지면 아이큐가 13점 낮아질 수 있다

돈이 부족할수록 더 꼼꼼하게 계산하고 계획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부족함 자체가 그 일을 해낼 힘부터 빼앗는다면 어떨까요.
돈 걱정에 사로잡힌 사람의 실수를 의지나 성격의 문제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핍은 통장 잔액에 머물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 좁힙니다.
걱정이 생각의 자리를 차지할 때

2013년 《Science》에 발표된 연구에서 사람들은 자동차 수리비가 드는 상황을 떠올린 뒤 인지검사를 받았습니다. 수리비가 작을 때는 소득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부담이 큰 수리비를 생각하자 저소득층의 수행만 눈에 띄게 낮아졌습니다.
그 차이는 최대 IQ 13점에 해당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능력이 갑자기 사라졌다기보다 해결되지 않은 돈 문제가 머릿속에서 계속 작동하며 검사에 쓸 인지 자원을 가져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뇌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생각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월세와 연체, 예상 밖의 수리비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계산하고 비교하며 충동을 억제하는 일에 쓸 공간은 줄어듭니다. 저장 공간이 부족한 휴대폰처럼 평소에는 쉬웠던 결정도 버거워집니다.
결핍이 다시 결핍을 부르는 고리

이때 “더 절약하고 더 꼼꼼해지면 된다”는 조언은 절반만 맞습니다. 꼼꼼한 판단에는 주의력과 여유가 필요한데, 결핍은 바로 그 자원을 먼저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급한 비용에 시선이 모이면 먼 미래의 손해는 흐려집니다. 마감과 월세가 급할수록 장기 계획보다 눈앞의 불을 끄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실수와 불리한 선택은 다시 결핍을 키우며 악순환을 만듭니다.
센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샤퍼는 이를 결핍이 마음을 사로잡는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한 가지 문제에 강하게 집중하게 해주는 대신, 그 밖의 중요한 신호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터널’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인도 사탕수수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도 같은 방향을 보여줍니다. 연구진은 같은 농부들에게 수확 전과 수확 후 두 차례 인지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수확 뒤 돈이 생긴 시점에는 인지 수행이 더 좋아졌습니다.
짧은 기간에 사람이 더 성실하거나 똑똑해진 것은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마음을 짓누르던 재정적 결핍의 강도였습니다. 이 결과는 판단의 실패를 개인의 고정된 능력보다 그가 놓인 상황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의지를 더 쥐어짜는 일만이 아닙니다. 자동이체처럼 반복 결정을 줄이는 장치, 예상 밖의 지출을 흡수할 작은 여유, 중요한 선택을 걱정이 덜한 때로 옮기는 방식이 생각의 틈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자책에 앞서 지금 내 시야를 좁히는 결핍의 터널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결핍의 경제학 · 센딜 멀레이너선·엘다 샤퍼
《결핍의 경제학》은 돈과 시간의 부족이 어떻게 주의를 사로잡고 판단력을 떨어뜨리는지 인지과학 연구를 통해 설명합니다. 결핍 속에서 반복되는 실수를 단순한 의지 부족으로 보지 않게 해주는 책입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센딜 멀레이너선과 프린스턴대학교의 엘다 샤퍼는 개인을 탓하기 전에 그 사람의 인지 대역폭을 점유한 환경부터 보자고 제안합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더 강한 의지를 요구하기보다 생각할 여유를 남기는 조건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게 합니다.
